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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8.06.30 이유

며칠 전의 꿈

日常 2008. 12. 12. 03:33

  나는 가끔 꿈을 기억하고 드물게 잠들지 못한다. 잠 하나는 언제나 잘 자는 편이다.

  그런데 오늘 밤이 그 '드물게'인 것 같다.

  며칠 전은 '가끔'이었다.  

  꿈에서 난 재수가 지지리도 없는 제비를 뽑아서 편히 죽지 못하고 붕괴 직전의 어둡고 황폐한 세상에 남겨져 지구를 구해야 했다. 가족과 헤어질 때, 동생 앞에서만큼은 개폼을 잡으며 내가 어떻게든 하겠다고 큰소리를 땅땅쳤다. 내가 알던, 내가 좋아했던 모든 사람들이 없어져 버렸다. 지금은 세부적인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 온갖 고초를 겪던 중, 소 뒷걸음 치다 쥐 잡은 격으로 '우연히' 지구를 구했다.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왔다. 죽었던 사람들이 다시 살아있었고 세상은 멀쩡했던 예전과 '똑같았고' 난 지구를 구한 히어로가 됐다. 뉴스에 내 얼굴이 나왔다. 그 순간 불현듯 꿈 속의 난 알게 되었다. 지금 이 세상은 내가 예전에 살았던 그곳이 아니고, 난 이미 사라진 내 원래 세상에서 똑같이 생긴 다른 세상으로, 그러니까 일종의 패러렐 월드로 '나 혼자' 도망쳐왔을 뿐이라고. 그리고 깼다.

  기분 나쁜 꿈이었다. 친구에게, SF를 너무 많이 본 것 같다, 좀 참신하고 재밌는 꿈이면 메리 셸리처럼 소설이라도 쓸 텐데 이건 뭐 순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진부하기 짝이 없는 설정들만 짜깁기되어 소설도 못쓰겠다, 그렇다고 복권을 해도 꽝일 것 같으니 개꿈이네, 개꿈! 등의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괜히 낄낄거렸다.

  '만약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때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따위의 부질없는 후회나 하며 '드물게' 잠들지 못하는 지금, 알겠다. 난 며칠 전의 그 기분 나쁜 개꿈을 꿔도 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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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7.8.火

日常 2008. 7. 8. 02:55


  수업을 들었다. 조모임을 했다. 셔틀에서 신문을 읽었다. 방으로 돌아와서 작년 가을에 사놓고 책장에 묵혀두었던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책장 사이에서 남이섬 입장권 두 장이 떨어졌다, 지금 이건 좀 너무한데 으허허 한번만 봐주지―을 읽었다.  메신저에 접속해 오랜 친구들과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의미없이 인터넷을 방황하며 무언가를 끊임없이 읽었다.

  언어는 결코 완전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오늘만큼은 그 불완전한 언어가, 그것도 타인의 언어가 절실히 고맙게 느껴졌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을 때는 괜찮다. 수업을 듣고 있을 때, 책을 읽고 있을 때, 공부를 하고 있을 때는 괜찮다. 그 생각'만'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래서 오늘은 필사적으로 말을 듣고 글을 읽었을는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처럼 그 생각'만'을 해야하는 순간은 견디기 힘들다. 냉정하게 말해 견딜 수는 있지만, 그 생각'만'을 하며 스스로의 밑바닥을 엉망진창으로 후벼파는 자신을 지켜보며 그 아픔을 고스란히 느껴야한다.

  예전부터 그랬듯, 난 도망가지 않고 '어떻게든' 견딜 수 있을 뿐이다. 그건 알량한 자존심과 고지식한 책임감, 얄팍한 도덕심 같은 것 때문이겠지. 그게 강한건가?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냉정하게 스스로를 잘 추스리고 이 관계를 회복할 수 있게 될 지 모른다. 더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엔 우울한 날의 술안줏거리로 전락하겠지. 그보다 시간이 더 흐른 먼 훗날엔 '아름다운 추억' 정도로 곱게 퇴색되어 머리 한 켠에 자리잡든지. '그래도 그때가 좋았지, 그냥 그때는 그랬어' 그렇게 말하며 적당히 농담으로 눙쳐버릴 미래의 나를 생각하며 문득 맥빠진 적의가 밀려온다.  

  지금 당장은, 책장에 아직 읽지 않은 책들과 밑줄 그어 가며 읽었던 나의 소중한 책들이 있어주어서, 공부해야할 것들이 있어주어서, 그리고 무엇보다 오랜 친구와 동생이 있어주어서 다행이란 느낌이 들었다.

Posted by rod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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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日常 2008. 6. 30. 02:17

  다시 돌아왔다.

  난 사실 '다시 돌아오다'란 말을 몹시 싫어한다.

  난 돌아오지 않는다.

(…) 써놓고 보니 보편적인 사람이 뭔데? 란 생각이 들긴 합니다. 그래도 이런 성격 탓에 억지로 타인들의 기호와 동화되고 싶지는 않아요. 뭐 그게 '내가 나'라는 증거니까요. 항상 타인과 나사이에는 어떤 선이 있고 그 선과 거리를 일정하게 두고 사는 것 같습니다. 가끔씩 외로워도 자유로운게 좋은거지요. 앞으로도 아마 그렇게 살아갈 겁니다.

  4년 전 겨울, 블로그를 처음 시작하며 썼던 낯 뜨거운 글. 2004년의 나는 꽤 건방지고 속물적인 녀석이었나보다. '타인의 기호'를 배제함으로써 '자신의 기호'를 만들고 그것이 자신을 고결하고 자유롭게 만들어줄 거라고 믿었던 인간이라니, 적(敵)이 없으면 안 되는 인간이라니, 그건 너무 서글프지 않은가. 난 불과 몇년 전까지만해도 적(敵)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건 아마 내가 스스로는 '내가 나라는 증거'를 찾을 수 없는 약한 인간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지금도 난 약하다. 그래서 다시 글을 쓰기로 했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의 감정과 생각을 붙잡아 박제해버리고 싶어서. 그리고 자신의 밑바닥에 가라앉은 어떤 진정성을 '언어'라는 불완전한 형태로나마 찾고 싶어서. 그래서 나는 나를 위해 다시 글을 쓰기로 했다.
 
    
Posted by rod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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