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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통 2009. 11. 29. 02:47

외롭고 불안하고 지치고 지긋지긋하다.

연인에게 이런 말을 할 수는 없을 거야.
친구에게라면 할 수 있겠지만, 결코 달라지는 건 없겠지.

삶을 살아가는 것이 지친다. 지겹다. 간절히 하고 싶은 것도, 반드시 되고 싶은 것도 없다. 

그것을 문득 깨닫는 순간이 있다. 이 젊은 나이에 벌써, 그것 참 웃기게도.

내 앞에 펼쳐진 지금보다 지겨운 생. 간절히 하고 싶은 것도, 반드시 되고 싶은 것도 없는 나는, 언제까지나 '해야만 하는 것'이나 '남들이 해주길 바라는 것'을 꾸역꾸역 해나가며, 생을 견뎌나가게 되는 걸까.  

그것을 잊기 위해,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음악을 듣는다. 픽션의 세계를 유영한다. 

지극히 즉물적인 위로. 이것이 과연 온당한 일일까.
 

Posted by rod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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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의 꿈

日常 2008. 12. 12. 03:33

  나는 가끔 꿈을 기억하고 드물게 잠들지 못한다. 잠 하나는 언제나 잘 자는 편이다.

  그런데 오늘 밤이 그 '드물게'인 것 같다.

  며칠 전은 '가끔'이었다.  

  꿈에서 난 재수가 지지리도 없는 제비를 뽑아서 편히 죽지 못하고 붕괴 직전의 어둡고 황폐한 세상에 남겨져 지구를 구해야 했다. 가족과 헤어질 때, 동생 앞에서만큼은 개폼을 잡으며 내가 어떻게든 하겠다고 큰소리를 땅땅쳤다. 내가 알던, 내가 좋아했던 모든 사람들이 없어져 버렸다. 지금은 세부적인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 온갖 고초를 겪던 중, 소 뒷걸음 치다 쥐 잡은 격으로 '우연히' 지구를 구했다.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왔다. 죽었던 사람들이 다시 살아있었고 세상은 멀쩡했던 예전과 '똑같았고' 난 지구를 구한 히어로가 됐다. 뉴스에 내 얼굴이 나왔다. 그 순간 불현듯 꿈 속의 난 알게 되었다. 지금 이 세상은 내가 예전에 살았던 그곳이 아니고, 난 이미 사라진 내 원래 세상에서 똑같이 생긴 다른 세상으로, 그러니까 일종의 패러렐 월드로 '나 혼자' 도망쳐왔을 뿐이라고. 그리고 깼다.

  기분 나쁜 꿈이었다. 친구에게, SF를 너무 많이 본 것 같다, 좀 참신하고 재밌는 꿈이면 메리 셸리처럼 소설이라도 쓸 텐데 이건 뭐 순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진부하기 짝이 없는 설정들만 짜깁기되어 소설도 못쓰겠다, 그렇다고 복권을 해도 꽝일 것 같으니 개꿈이네, 개꿈! 등의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괜히 낄낄거렸다.

  '만약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때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따위의 부질없는 후회나 하며 '드물게' 잠들지 못하는 지금, 알겠다. 난 며칠 전의 그 기분 나쁜 개꿈을 꿔도 쌌다. 

 
Posted by rod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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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7.8.火

日常 2008. 7. 8. 02:55


  수업을 들었다. 조모임을 했다. 셔틀에서 신문을 읽었다. 방으로 돌아와서 작년 가을에 사놓고 책장에 묵혀두었던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책장 사이에서 남이섬 입장권 두 장이 떨어졌다, 지금 이건 좀 너무한데 으허허 한번만 봐주지―을 읽었다.  메신저에 접속해 오랜 친구들과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의미없이 인터넷을 방황하며 무언가를 끊임없이 읽었다.

  언어는 결코 완전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오늘만큼은 그 불완전한 언어가, 그것도 타인의 언어가 절실히 고맙게 느껴졌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을 때는 괜찮다. 수업을 듣고 있을 때, 책을 읽고 있을 때, 공부를 하고 있을 때는 괜찮다. 그 생각'만'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래서 오늘은 필사적으로 말을 듣고 글을 읽었을는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처럼 그 생각'만'을 해야하는 순간은 견디기 힘들다. 냉정하게 말해 견딜 수는 있지만, 그 생각'만'을 하며 스스로의 밑바닥을 엉망진창으로 후벼파는 자신을 지켜보며 그 아픔을 고스란히 느껴야한다.

  예전부터 그랬듯, 난 도망가지 않고 '어떻게든' 견딜 수 있을 뿐이다. 그건 알량한 자존심과 고지식한 책임감, 얄팍한 도덕심 같은 것 때문이겠지. 그게 강한건가?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냉정하게 스스로를 잘 추스리고 이 관계를 회복할 수 있게 될 지 모른다. 더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엔 우울한 날의 술안줏거리로 전락하겠지. 그보다 시간이 더 흐른 먼 훗날엔 '아름다운 추억' 정도로 곱게 퇴색되어 머리 한 켠에 자리잡든지. '그래도 그때가 좋았지, 그냥 그때는 그랬어' 그렇게 말하며 적당히 농담으로 눙쳐버릴 미래의 나를 생각하며 문득 맥빠진 적의가 밀려온다.  

  지금 당장은, 책장에 아직 읽지 않은 책들과 밑줄 그어 가며 읽었던 나의 소중한 책들이 있어주어서, 공부해야할 것들이 있어주어서, 그리고 무엇보다 오랜 친구와 동생이 있어주어서 다행이란 느낌이 들었다.

Posted by rod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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