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을 들었다. 조모임을 했다. 셔틀에서 신문을 읽었다. 방으로 돌아와서 작년 가을에 사놓고 책장에 묵혀두었던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책장 사이에서 남이섬 입장권 두 장이 떨어졌다, 지금 이건 좀 너무한데 으허허 한번만 봐주지―을 읽었다. 메신저에 접속해 오랜 친구들과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의미없이 인터넷을 방황하며 무언가를 끊임없이 읽었다.
언어는 결코 완전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오늘만큼은 그 불완전한 언어가, 그것도 타인의 언어가 절실히 고맙게 느껴졌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을 때는 괜찮다. 수업을 듣고 있을 때, 책을 읽고 있을 때, 공부를 하고 있을 때는 괜찮다. 그 생각'만'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래서 오늘은 필사적으로 말을 듣고 글을 읽었을는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처럼 그 생각'만'을 해야하는 순간은 견디기 힘들다. 냉정하게 말해 견딜 수는 있지만, 그 생각'만'을 하며 스스로의 밑바닥을 엉망진창으로 후벼파는 자신을 지켜보며 그 아픔을 고스란히 느껴야한다.
예전부터 그랬듯, 난 도망가지 않고 '어떻게든' 견딜 수 있을 뿐이다. 그건 알량한 자존심과 고지식한 책임감, 얄팍한 도덕심 같은 것 때문이겠지. 그게 강한건가?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냉정하게 스스로를 잘 추스리고 이 관계를 회복할 수 있게 될 지 모른다. 더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엔 우울한 날의 술안줏거리로 전락하겠지. 그보다 시간이 더 흐른 먼 훗날엔 '아름다운 추억' 정도로 곱게 퇴색되어 머리 한 켠에 자리잡든지. '그래도 그때가 좋았지, 그냥 그때는 그랬어' 그렇게 말하며 적당히 농담으로 눙쳐버릴 미래의 나를 생각하며 문득 맥빠진 적의가 밀려온다.
지금 당장은, 책장에 아직 읽지 않은 책들과 밑줄 그어 가며 읽었던 나의 소중한 책들이 있어주어서, 공부해야할 것들이 있어주어서, 그리고 무엇보다 오랜 친구와 동생이 있어주어서 다행이란 느낌이 들었다.